‘결혼의 계절’에 돌아온 부조문화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처럼 느껴지는 계절. 이곳 저곳 챙기자니 주머니가 헐렁하다. 눈 딱 감고 갈 자리만 가려니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삶의 작은축제, 경조사’의 부조는 얼마가 적당할까? 또 어디까지 챙겨야 하는 걸까?
“경조사 없는 나라, 대한민국 좋은 나라!”를 외치는 유씨지만 막상 현장에는 누구보다 먼저 가 있다. “경조사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또 회사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현금시장 ‘경조사’
‘큰 일이 닥쳤을 때 서로 돕는다’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이 부조, 곧 경조사 문화다. 한국소비자연구원이 1998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1인당 평균 11.4회의 경조사에 참석하고, 52만2천원의 경조사비를 지출한다. 평균 결혼축의금은 2만8천8백원이다. 결혼 축의금만 따지면 연간 1조7천억원의 현금시장으로 잠정 추산된다. 여기에 장례, 돌, 칠순까지 포함하면 ‘경조사’는 최고의 현금시장이 분명하다.
#얼마가 적당할까
2만원은 적고, 5만원은 부담스럽고…. 각종 경조사의 부조금은 얼마가 적당할까? 사실 수학공식처럼 얼마로 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에서는 ‘3만원 내외의 선물은 괜찮다’는 주장이다. ‘3만원’이 친척이나 특별한 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관계에서의 적정 부조금이라는 해석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김시덕 연구원(유물과)은 ‘3만원’이란 금액은 홀수를 선호하는 동양문화에서 비롯된 금액이라고 설명한다. 동양문화에서 ‘3’은 천(天)·지(地)·인(人)의 조화이자 가장 안정적이고 완전한 수로 꼽힌다.
혼례문화를 연구하는 김정철 교수(대전 우송정보대학)는 일반 예식장에서 하객 1인의 식비를 1만5천~2만원선으로 잡을 때 최소 부조금은 ‘3만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호텔웨딩 등 예식의 고급화 경향이 늘어나면서 최소 부조금도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부조도 있다니
시간이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놓친 부조를 대신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www.bujoo.com)’가 등장했는가 하면 부조금 퀵 서비스, 식장을 채워주는 하객 아르바이트까지 다양하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결혼식은 가을걷이가 끝난 농한기에 잡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장례 역시 5일, 7일, 9일로 길게 잡았으나 1973년 가정의례 준칙 제정 이후 3일장으로 굳어졌다. 식장에 따라서는 밤샘을 금하는 것도 요즘 장례식장의 풍경. 한때 경조사에 화환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98년 이 규제가 위법이라는 판결후 화환이 다시 등장했다.
화환 대신 ‘쌀’을 보내는 식장도 눈에 띈다. 지난 17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소영씨의 결혼식에선 화환 대신 ‘쌀’을 전시해 놓아 이채를 띠었다. 또 예비 신랑·신부들의 당당한 결혼선언이나, 청첩장에 결혼 블로그, 축의금 계좌가 등장하는 일도 새삼스럽지 않다. 젊은 커플들의 ‘결혼식 흥행’을 위한 몸부림이 귀엽다.
백일, 돌, 결혼, 회갑, 칠순, 장례 등 각종 경조사는 인생의 마디와 매듭 같은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삶에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경조사. 삶의 축제를 함께 나눈다는 마음으로 기껍게 즐길 일이다.
[2005-04-21 경향신문 김후남기자]